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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9억 남았죠, 7년만에 11억 갚게 해준 대박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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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7 11:01:20
한때 남성복 최고 온라인 쇼핑몰
120평 가로수길 매장 등 무리한 확장
빚만 20억 파산 직전, 자살까지 생각
찬 바람 막아주는 온장고 바지로 재기

넘어졌다 일어서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아이템 하나로 일어선 제이브로스(Jbros) 김택중 대표를 만났다.
 
○내부가 융털로 된 바지
 
제이브로스의 대표 상품은 ‘온장고’ 바지다. 바지 내부가 융털로 돼 있어, 따뜻해서 붙은 별칭이다. “흔히 입는 기모 보다 따뜻합니다. 불편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두께감을 갖고 있죠.”
 
할머니들이 입는 바지에서 출발했다. “화려하면서 얇고 하늘거리는, 흔히 말하는 몸빼 바지 있잖아요? 그걸 온라인에선 저희가 처음 팔았습니다.”

김택중 제이브로스 대표 /콘텐츠팀

몸빼 바지가 온라인에서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만든 게 ‘냉동고 바지’다. “몸빼 바지는 얇고 활동성이 좋아 여름에 입기 좋습니다. 무척 시원하죠. 하지만 색상이 너무 화려해서 입기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고민하다 검정 같은 무난한 색상으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데일리 의상으로 입을 수 있게요.” 냉동고 바지라 이름붙여 팔았더니 대박이 났다.
 
온장고 바지는 냉동고 바지 내부에 융털을 넣은 것이다. 활동성과 편안함을 살리면서 보온성도 넣었다. 1만2000원의 부담없는 가격이라 선뜻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 남자 모두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이 간단한 냉동고, 온장고 바지가 온라인(http://bit.ly/2sgSau7)에서 매년 10만장씩 팔린다. 5년 전 출시돼 지금까지 50만장 팔렸다.
 
후드티, 터틀넥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같은 재질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바지 하나가 브랜드로 커진 셈입니다. 포장을 재미있게 했더니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지 외에 다른 라인업도 묶어서 선물하는 거죠. 커플이나 단체용으로 여러벌 구매하는 분도 많으세요.” 후드티 등 다른 제품은 지금까지 10만장 정도 팔렸다. 일본 유니클로 처럼 저렴하고 간편해서, 일본 불매운동 때 대체 회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옷 도·소매에 잡지까지 연달아 성공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학교 다니면서 영화 촬영과 조명 스텝 일을 하다가, 군대를 사진병으로 갔다. “영화연출 배우면서 사진도 배웠습니다. 어려서 사진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제대하고 학교 졸업 후 사진 스튜디오에 들어가 작가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말이 어시스턴트지, 작가에 준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2년 간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당시 업계가 그랬습니다. 요즘 말하는 열정페이죠. ‘독립해서 스튜디오 차리려면 내 밑에서 열심히 배워라. 강습료 안받는걸 다행으로 알아라’ 하는 식이죠.”
 
생계가 너무 힘들었다. 다른 일 찾기로 했다. 그만둔다고 했다. 그랬더니 30만원의 월급을 준다고 했다. “바보 같은 게 그 월급 받고 1년 더 일했습니다. 교통비와 휴대폰 요금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죠.”
 
친동생이 서울 이태원에서 떼어온 옷을 온라인몰 ‘옥션’에서 파는 일을 시작했다. “제품 사진 촬영 같은 걸 도왔습니다. ‘이게 되겠나’ 했는데 엄청 팔렸습니다. 신났죠. 곧 스튜디오 나와서 동생과 의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옷을 좋아했나요?
“그럼요. 너무나요. 없는 돈 모으고 모아서 브랜드 청바지 하나 사고 그랬습니다.”
 
나와서 하니 더 잘됐다. 지인 몇몇이 합류하면서 직원이 10명으로 늘었고, 자체 쇼핑몰도 열었다. 서울 이태원과 동대문에서 대량으로 떼어 온 옷을 자체몰에서 팔았다. “아는 옷만 했습니다. 남성복을 전문으로 한 거죠. 곧 꽤 독보적인 지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직원들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김택중 대표 /콘텐츠팀

소매가 잘 되면서 도매에 진출했고 자체 공장도 세웠다. 자체 제품 외에 다른 회사 제품까지 일주일 50~70개씩 새 제품을 선보였다. “몇 가지 제품이 팔리는지 직원도 알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방송인 찰스를 모델로 쓰며 기세를 올렸다. 매출이 곧 100억원을 넘어었다. 여성복에 ‘스타일난다’가 있다면, 남성복엔 ‘제이브로스’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거침이 없었다. '물 들어올 때 노젓자' 생각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했다. 서울 명동, 동대문, 강남역, 가로수길, 부산 롯데 등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회사 자금으로 투자금이 부족해 외부 투자를 받아 확장을 했습니다. 서울 가로수길 매장은 120평이나 됐죠.”
 
‘제이북’이란 이름의 잡지도 냈다. 처음 브로셔로 시작했다. 손님에게 옷을 소개하는 용도였다. 김 대표가 직접 사진을 찍어 올렸다. "어느날 백화점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 상품이 화려하게 소개되고 있더라고요. 바로 따라하기로 했습니다." 보로셔의 소개 상품을 크게 늘렸다. 처음 4p짜리가 8p, 16p, 32p로 계속 늘었다. 시장에 뿌리고 바이어에 보여줬다. 그걸 본 주변 다른 업주들이 ‘내 상품도 넣어달라. 얼마면 되겠냐’고 했다. 그렇게 몇몇 광고를 수주해서 다른 제품도 넣었다. “다양한 도매 브랜드의 제품 화보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화보처럼 만들다 아예 ‘잡지로 만들어 보자’해서 만든 게 패션 월간지’ 제이북’이다. 나오자 마자 잘됐다. 기자와 디자이너 등을 뽑아 정성껏 만들었더니 한 달 1만5000부까지 발행부수가 올라갔다. 두께는 250p에 달했다. “얇은 브로셔가 이렇게까지 두꺼워진 겁니다.”
 
공격적인 매장 확대에 잡지까지. 시장, 매장, 거래처 등을 매일 돌며 하루 두 시간만 자고 일했다. “정말 일이 많았습니다. 체력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수준까지 갔습니다.”

 

○파산 직전, 자살까지 생각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2009년부터 사업이 조금씩 기울었다. 경기 부진 탓이었다. 곧 한 달 2억원 씩 적자가 났다. “매장 임대료만 한 달 1억원이 넘었습니다. 거기에 인건비까지. 매출이 그 이상으로 많이 나야 비용을 벌충하면서 수익이 날 수 있는데, 거꾸로 매출이 줄면서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외상도 쌓였다. “업계에 ‘잔’이라고 해서요. 옷을 먼저 받고 대금을 나중에 주는 외상거래가 있는데요. 그게 원래 없었는데 어느새 수억원 어치가 생겼습니다. 그나마 기존 거래 관계가 좋아서 잔이라도 동원해 장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게 너무 커져 버린거죠.”
 
2012년 결국 파산 직전까지 갔다. 50명 넘던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막내급 직원 4명만 남았다. 동생은 이미 독립시킨 상태였다. 회사 사무실은 서울 가로수길에서 약수동으로 옮겼다.
 
남은 건 20억원의 빚. 일주일 5000만원씩 갚을 돈이 돌아왔다. 집 파고, 차 팔고, 가진 모든 걸 팔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고통이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장난 아닙니다. 사무실 나가면요. 추심업체부터 예전 거래처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든 건 지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를 믿고 투자했는데 배신한 셈이 됐으니까요.”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래도 가족이 있었고, 믿어주는 지인들이 있었다. 닥치는대로 했다. 지인 가게 인테리어, 쇼핑몰 개설 컨설팅, 사진 촬영 등. 일 생기는대로 아르바이트해서 직원 급여 주고 빚 갚았다. “빌고 빌어서 하루 5만원, 일주일 10만원 씩 갚겠다는 식으로 설득해서 빚 갚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낮에 알바하고 밤에 회사 운영하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온장고 브랜드 의류 모델 /제이브로스 제공

○회사를 구원한 아이템
 
그러다 시작한 게 몸빼바지다. 처음 중국에서 마대 자루 채로 들여왔다. 한 자루 100개씩 다양한 무늬의 옷이 들어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 몇가지 대표적인 옷만 올려놓고 ‘색상과 무늬는 랜덤 발송됩니다’ 같은 문구를 달아놓습니다. 개당 단가가 워낙 싸니 일일이 사진 찍어 올리는 공수를 하기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남처럼 해서는 위기 돌파가 어려웠다. 마대 자루에서 일일이 제품을 꺼내 하나 하나 사진을 찍어 올렸다. 밤 새는 건 물론이고 주말까지 나와 작업했다. 망하기 직전의 마지막 몸부림. “멋있는 옷만 팔다가 허름한 옷을 작업하고 있으려니, ‘내가 이렇게까지 몰락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했으니 ‘망해도 미련은 없겠다’ 싶더군요.”
 
이상하게 반응이 왔다. “신기했어요. '이거라도 해볼까' 한거였는데 팔리는 거에요.” 재밌어서, 호기심에 사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보고 데일리용으로 생산한 게 냉동고, 온장고 바지다. 디자인이 무난해 외출이나 운동용으로 입는 사람이 많다. 이제 회사 매출의 절반이다. “그야말로 회사를 살린 아이템이 됐습니다.” 
 
냉동고, 온장고 바지가 온라인(http://bit.ly/2sgSau7) 등에서 대박이 나면서 악성 채무가 모두 정리됐다. 괴롭혔던 외상매출 ‘잔’은 물론 지인, 거래처 빚이 하나도 없다. “개인 빚은 모두 정리되고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회사 빚만 남았습니다. 9억원 정도 되네요. 이것도 열심히 해서 모두 갚아야죠.”
 
-빚 갚을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너무 뿌듯했습니다. 가로수길 매장 열 때 2억원을 빌려준 분이 있는데요. 망하고 나서 매달 1000만원씩 갚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다 갚았습니다. 사실 그분이 외부 투자에 100억원을 써서 모두 실패했다고 하는데, 빚 갚은 사람은 저밖에 없다더군요. 약속 다 지켰다며 지금도 도와주시고 무척 감사한 분입니다.”

온장고 옷을 착용한 김택중 대표와 선물포장 /제이브로스 대표

○본질에 집중한다
 
엄청나케 카피가 이뤄지고 있다. “상세페이지부터 사진 콘셉트, 포장까지. 대놓고 따라하는 업체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름 냉동고, 겨울 온장고 바지는 우리 회사 대표 상품으로 나름 브랜딩이 돼 있습니다.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죠. 다른 제품들 보면 단가 아끼려다 옷 두께가 지나치게 앏아졌거나 호주머니 손 안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량 제작하면서 단가 아끼려다 함량미달 제품을 만든 거죠. 하지만 우리는 대량 주문하기 때문에 단가를 낮추면서도 충분히 품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냉동고, 온장고 바지 외에 쇼핑몰 운영과 도매업을 계속 한다. 매장은 서울 강남역 지하 상가만 남았다. “인근 직장인들이 많이 찾아주십니다. 매장 하나에만 집중했더니 괜찮은 수익이 나옵니다. 빚 갚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본인의 가장 큰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온라인 쇼핑몰 핵심 중 하나인 사진 촬영을 직접 할 수 있는 거요. 팔릴만한 비주얼 뽑는 데 능하죠. 제품 콘셉트 잡고 브랜딩하는 것도 잘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사진과 패션 좋아한 덕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제이브로스 홈페이지와 인터뷰하는 김택중 대표 /콘텐츠팀

-지난 선택 중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요.
“무리하게 확장하던 때요. 당시 다른 업체들은 마케팅의 중심을 키워드 광고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포털에 쇼핑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기들 몰이 나오게 한거죠. 온라인 광고도 많이 늘렸습니다. 반면 저는 매장을 크게 늘리면서 잡지까지 만들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갔습니다. 정반대 길을 간 거죠. 온라인 중심으로 간 업체들은 수천억, 수조원 업체로 도약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때 판단이 너무 아쉽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선 트렌드를 읽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보다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해보죠. 또 창업할 건가요.
“그럼요. 망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고요. 일이 너무 재밌습니다.”
 
이제 다시 뻗어나가야 할 때. 예전 실패 경험 때문에 사업확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제 능력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요. 실패하면서 제 능력의 끝을 봤습니다. 그 이상은 불가항력이더군요. 다만 지금 제 직원들과 함께라면 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꼭 관련된 확장만 할 계획입니다. 냉동고, 온장고 바지처럼 보다 많은 베이직한 제품을 저렴하고 대중적으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예전에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면, 앞으론 꼭 관련된 확장만 하겠습니다.”

/콘텐츠팀

 

 

[이제 9억 남았죠, 7년 만에 11억 갚게 해준 대박 물건]

전체 내용은 링크를 통하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http://naver.me/GEWvj3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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